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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요코 이야기' 저자 일문일답
제목 [이슈]'요코 이야기' 저자 일문일답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7-02-03 11: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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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 저자 일문일답
[중앙일보 손민호] '요코 이야기'의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73)가 중앙일보의 질문에 대해 보내온 답변을 싣는다. 답변은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옮겼다.

-'요코 이야기'는 소설인가, 수기인가.

"둘 다다. 1976년 20년 만에 오빠 히데오를 만났을 때 나는 오빠가 어떻게 나남(청진시)을 탈출했는지 물었다. 그러나 오빠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묻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한국 지도를 펼쳐놓고 그가 지나왔을 길을 상상했다. 오빠는 자신을 도운 한국인 가족에게 '평생의 빚을 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들 가족의 위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오빠 부분만 빼고 모두 사실이라는 것인가.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썼다."

-소설 속 몇몇 부분이 결정적 오류란 지적이 있다. ①나남은 대나무가 살 수 없는 곳이다. ②일본 패망 전에 미국이 나남 지역을 폭격한 일이 없다. ③45년 목격했다는 북한 인민군은 48년 창설됐다 등의 반론이다.

"①어머니가 대나무를 그리워하자 아버지가 고향 아오모리에서 노란 대나무를 구해왔다. 10년이 흐르면서 대나무는 숲을 이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나무숲은 아니다. 얇고 길죽한 대나무밭이다. ②미군이 나남 부근을 폭격했다고 쓰지 않았다. '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다들 땅 위로 엎드려! 하고 선생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미국 비행기 3대가 우리 머리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중이었다'라고 썼다. 당시 나진에 살았던 교통부 장관 푸유시바도 'B-29기가 종종 나진 지역을 맴돌았다'고 회고했다(마이니치 신문 2006년 11월 22일). 내가 본 비행기는 B-29기일 수도 있고 소련 비행기일 수도 있다. 나는 비행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선생님이 머리를 숙이라고 다급하게 외치던 순간, 분명히 보았다. ③'인민군(Korean Communist soldiers)'이라는 표현을 나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내가 말하려 했던 건 역사적 사실보다 내 가족의 생존에 관한 것이었다. 역사에 따르면 인민군은 45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때 마주쳤던 북한 민병대(North Korean Militia)는 누구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인을 가장 자극했던 대목은 한국 남성이 일본 여성을 성폭행하는 부분이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전쟁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45년 당시 한국인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은 식민통치에서 막 벗어났다는 기쁨에 차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본 그대로를 옮겼다면 독자들은 공포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어린 독자를 위해 최대한 정중하고, 부드럽게 표현했다. 한국 독자를 화나게 한, 내 부족한 필력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과한다. 김부자씨가 쓴 '전쟁위안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Want to Know More About Comfort Women)을 96년 읽고서 전쟁위안부를 처음 알게 됐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일본 정부가 전쟁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녀의 수난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한국인이 가해자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 책은 10쪽 분량의 편지였다가 한 권짜리 책으로 늘어난 것이다. 역사적 배경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순수한 사람에게 슬픔을 주는 끔찍한 것'이란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미국의 한국 동포들이 교재 채택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저지의 한 한국인 학생은 학교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매우 유감이다. 미국 교육부는 최상의 교육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98년 교사가이드(the Teacher's Guide)가 발간됐을 때 정말 기뻤다. 가이드엔 책 두 권이 포함됐다. 최숙렬씨의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Year of Impossible Goodbyes)과 '요코 이야기'다. 그때 '나와 최 작가의 책이 하나로구나. 미국 아이들은 양쪽 사람들 이야기를 모두 배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미국 학생들이 한.일 관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줄곧 회고담에만 집중했다. 열한 살 아이가 돼 열한 살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제 난 어른으로서 학생들에게 일본 정부의 잔혹한 행위를 말한다. 한국.중국.일본의 민간인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었는지, 거리낌없이 얘기한다."

-일본인을 피해자로, 한국인을 가해자로 묘사한 극우주의자로 보는 한국인도 있다.

"난 극우파가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다. 일본인으로서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731부대의 고위 간부라는 의혹도 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일한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까지 731부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전쟁기록을 통해 가와시마 소장에 관한 섬뜩한 내용을 접하게 됐다. 두 명의 '가와시마'를 놓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학교에 내 가족의 호적등본을 보냈다. 가와시마 요시오(川良夫.1897~1968):아버지.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나 33년부터 45년까지 남만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가와시마 기요시(川島淸.1893~1989):731부대 의무소장, 생화학무기 생산부장. 일본 지바현 출생. 이바노보 감옥에서 56년 3월 일본으로 귀환.

두 사람의 이름에서 '시마(, 島)'의 철자를 비교해 보라. 아버지는 '산(山)'과 '새(鳥)'가 합쳐진 를 사용했고, 731부대 소장은 '산(山)'이 빠진 '섬(島)'자를 썼다."

-아버지가 만주에서 벌인 일 때문에 가족들이 인민군의 추격을 받는 장면이 소설에 나온다. 아버지가 시베리아에서 6년간 복역했다는 얘기도 있다. 주요 전범일 가능성은 여전하다.

"아니다. 아버지는 51년 가을 일본으로 돌아왔다. 책에는 전쟁이 끝난 지 6년 뒤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썼다. 기록에 따르면 가와시마 기요시 소장은 56년 3월 귀국했다. 우리가 쫓긴 건 아버지가 만주의 철도회사에 다녔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인은 모든 일본인에게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대개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시베리아 수용소에 있었다고 해서 모두가 전범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모든 일본군과 민간인, 심지어 그들 가족도 러시아 곳곳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고객감동아이쇼핑 방송국편집부
출처: 네이트>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손민호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plove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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